AI가 교실에 들어올 때, 인간적 요소는 대체 불가능한 변수가 된다

가톨릭 교육자들은 세속적 담론이 좀처럼 도달하지 못하는 명료함으로 인공지능의 통합 문제를 헤쳐 나가고 있다. 기술은 과제를 채점하고 데이터를 끌어낼 수 있지만, 사람을 형성할 수는 없다. 교황 레오 14세의 회칙 『마뇨피카 후마니타스』가 분명히 밝히듯, 어떤 도구든 그 척도는 그것이 인간의 발전에 이바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June 8, 2026
AI가 교실에 들어올 때, 인간적 요소는 대체 불가능한 변수가 된다

AI가 교실에 들어올 때, 인간적 요소는 대체 불가능한 변수가 된다

스튜벤빌 프란치스코 대학교의 물리학·데이터과학 교수는 최근, 인공지능에 교육 과정의 너무 많은 부분을 맡겼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학생들은 실제로 배우는 것을 피하면서 마치 능력이 있는 것처럼 흉내 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기술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지혜를 전달할 수는 없다. 덕을 길러줄 수도 없다. 그리고 학생의 호기심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고 연약할 때, 스승이 하는 일을 대신할 수도 없다.

AI를 교실에 도입하는 문제를 두고 교육자들이 고심하고 있다는 EWTN 뉴스 보도[1]는 핵심적으로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닌 논쟁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는 교육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어떤 알고리즘도 제공할 수 없는, 형성(formation)이 요구하는 것

보도에서 인용된 프란치스코 대학교 교수 페르난다 프시아스는 곱씹어 볼 만한 표현을 제시했다. 교육이란 지식을 지혜로, 기술을 덕과 인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1]. 이 표현은 철저히 인격적인 과정을 가리킨다. 학생의 혼란을 읽어내고, 그 성장의 궤적을 추적하며, 어떤 채점 알고리즘도 흉내 낼 수 없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간적 현존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데이터 집합이 아니다. 최적화해야 할 역량의 묶음도 아니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관계적이며, 신체를 지닌 존재로서, 그 온전한 성장은 진정한 만남에, 즉 스스로도 형성의 과정을 거친 타인에게 알려지고 인도받는 것에 달려 있다. 긍정 심리학의 치료적 동맹 관련 문헌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펼친다. 치료 결과가 개선되는 것은 주로 적용된 기법 때문이 아니라, 그 기법이 뿌리내리고 있는 관계의 질 때문이라는 것이다[2].

AI는 치료적 동맹을 맺을 수 없다. 교육적 동맹도 마찬가지다.

프시아스가 지목하는 위험은 구체적이다

교육에서 AI가 야기하는 위험은 단순히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이 아니다. 위험은 더 미묘하다. 그녀가 '인지적 외주화'라고 부르는 것, 즉 정신적 노력을 AI 도구에 위임하는 행위는 학습 과정 자체를 교란한다[1]. 학생이 논거를 형성하는 수고를 AI에 떠넘길 때, 명오가 실제로 발전하는 인지적 마찰을 우회하게 된다. 씨름은 학습의 장애물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학습의 기제다.

교육심리학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생산적인 씨름, 즉 즉각적인 해답 없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은 더 깊은 기억 부호화, 더 높은 파지율, 그리고 지식의 더 유연한 적용과 연관된다[3].

프시아스는 실질적인 창의성으로 이에 대응했다. 먼저 AI 도구로 과제를 직접 돌려보고 그 결과물을 살핀 다음,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사고를 요구하도록 과제를 재설계하는 방식으로 AI를 무력화하는 것이다[1]. 또한 그녀는 자신이 선다형 시험 채점과 데이터셋 생성에 AI를 활용한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이는 단순한 교육 기법이 아니다. 이것은 책임의 모범이다.

교황 레오 14세의 틀

회칙『마뇨피카 후마니타스』는 이 논의에 명료화의 렌즈로 개입한다[4]. AI는 반드시 인간 발전을 증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기술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관한 적극적 선언이다. 도구는 인간을 섬긴다. 인간이 도구를 섬기도록 재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 건강 영역에서도 AI 기반 웰빙 앱과 자동화된 치료 플랫폼의 급증은 동일한 구조적 물음을 제기한다. 치료적 관계가 심리적 치유의 핵심 요소라면, 그 관계가 실제가 아닌 시뮬레이션으로 대체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2]? 진정한 인간적 연결이 지닌 위험과 보람 대신, 인터페이스를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회복탄력성은 마찰 없는 경험을 통해 길러지지 않는다. 그것은 지지받는 씨름을 통해, 즉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안 사람을 붙들어주는 관계들을 통해, 그리고 자아보다 큰 틀에서만 비롯될 수 있는 의미의 내면화를 통해 길러진다[3].

파올로 카로차와 실재(reality)의 물음

교황청 사회과학 아카데미 회원이자 노트르담 로스쿨 교수인 파올로 카로차는, 프시아스가 교실 현장에 뿌리내린 논의에 철학적 차원을 더한다[1]. 그의 우려는, 기술이 사용자를 실재에 대한 근본적인 명오, 즉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의 실재를 향해 지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구체적인 위험을 가리킨다. AI가 매개하는 경험의 몰입적 편리함이 사용자와 실제로 실재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이는 진정한 탐구의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무능함으로, 또는 근거가 충실한 논거와 그럴듯하게 들리는 조작 사이의 차이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정신 건강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이들에게 유사한 왜곡은, 알고리즘이 선별한 감정적 공감을 진정한 공동체의 더 까다로운 참여보다 선호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4].

형성(formation)은 정확히 복잡성을 회피가 아닌 평정심으로 마주할 수 있는 역량을 계발하는 과정이다.

가치 우선 접근법

프시아스는 자신의 교육학을 가치 우선적이라고 묘사한다. AI를 활용해 효율을 높임으로써, 인간의 주의를 진정으로 중요한 학습에 쏟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1]. 호기심이 길러지는 종류의 대화를 위해, 멘토링을 위해 시간을 확보하는 데 AI를 활용하라. 진정한 교육을 이루는 인지적·도덕적 작업의 대체물로는 사용하지 말라.

AI 도구는 행정 업무를 지원하고, 관련 연구를 발굴하며, 그렇지 않으면 서비스에서 소외될 사람들에게까지 돌봄의 손길을 넓힐 수 있다. 이것들은 진정한 선이다. 이것들이 왜곡이 되는 것은, 치료적 관계나 사목적 만남, 또는 지속적인 인간적 동행의 대체물로 자리매김될 때뿐이다[2].

효율은 수단이다. 형성(formation)이 목적이다.

EWTN 뉴스 보도에서 인용된 교육자들은 기술 혐오자가 아니다[1]. 프시아스는 데이터과학을 가르친다. 카로차는 기술 정책을 형성하는 국제 기구들과 교류한다. 그들의 우려는 인공지능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AI가 인간 발전을 섬기게 되는지 혹은 저해하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조건들에 있다. 그 우려는『마뇨피카 후마니타스』를 이끄는 것과 동일한 우려다[4].

교실은 형성의 공간이다. 어려움을 헤쳐나가 더 큰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사람이 동행을 받는 모든 맥락이 그러하다. 그 공간들에서 활용 가능한 도구는 계속해서 변할 것이다. 그러나 목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출처

[1] EWTN News. (2025).Catholic educators weigh benefits, drawbacks of AI in the classroom. EWTN News. https://www.ewtnnews.com/catholic-educators-ai-classroom

[2] Norcross, J. C., & Wampold, B. E. (2011). What works for whom: Tailoring psychotherapy to the person.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67(2), 127–132. https://doi.org/10.1002/jclp.20764

[3] Kapur, M. (2016). Examining productive failure, productive success, unproductive failure, and unproductive success in learning.Educational Psychologist, 51(2), 289–299. https://doi.org/10.1080/00461520.2016.1155457

[4] Pope Leo XIV. (2025).Magnifica Humanitas[Encyclical letter]. Vatican Publishing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