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팀과 구원 불가능한 자들: 캐서린 니콜스가 옳게 본 것—그리고 놓친 것
캐서린 니콜스는 현대의 선악 대결 서사가 정치적 발명품이며, 도덕을 부족적 충성심으로 평면화하는 민족국가의 도구라고 주장한다. 그 병리에 대한 그녀의 진단은 대체로 옳다. 그러나 가톨릭 전통은 이러한 이야기를 향한 갈망이 민족주의보다 더 오래되고 더 깊은 데서 비롯된다고 가르치며, 그 갈망을 충족시키려면 단지 더 나은 서사 구조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낯설게 다가오는 한 문장
캐서린 니콜스는 자신의 가장 날카로운 통찰을 거의 무심하게 던진다. 선과 악의 패러다임은 "단순한 편 가르기 사고"를 조장하며, 그 안에서 도덕은 누가 선한 편이고 누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할 구제불능인가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끝없이 문명적 위협을 쏟아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관객에게 특정한 감정적 습관을 길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아무런 노력 없이 의로운 편에 위치시키고, 응축된 악의를 타자에게 투사하는 습관이다. 니콜스는 이 현상의 기원을 사회적 결속을 만들어낼 이야기가 필요했던 19세기 국민국가의 부상에서 찾는다. 그 이전에 서양 민담은 상쾌할 정도로 소박했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잭은 거인의 금을 원했다. 그리스인들은 헬레네를 되찾고 싶었다. 아무도 우주를 구하지 않았다.
이 진단은 심각하다. 그러나 이 에세이는 이러한 도덕적 갈망을 순전히 정치적 산물, 즉 국가가 퍼뜨린 인지적 바이러스인 것처럼 다룬다. 더 오래된 전통은 오래전부터 보다 불편한 사실을 견지해 왔다. 그 갈망은 실재하고, 그 감염도 실재하며, 이 둘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데올로기와 신화는 같지 않다
조던 피터슨의[^1] 신화 해석은 여기서 유용한데, 니콜스가 우려하는 바로 그 환원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피터슨이 보기에 위험은 이야기가 선과 악의 투쟁을 다루는 데 있지 않다. 위험은 이데올로기가 신화를사칭하면서그 복합성을 절단하는 데 있다. 진정한 신화는 현실의 온전한 무게를 담고 있다. 영웅의 잔혹함에 대한 잠재력, 악당의 이해 가능한 논리, 구원하는 힘 자체가 폭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이다. 반면 이데올로기는 "이야기의 일부를 마치 전체인 양 말하며", 모든 청자를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인물과 동일시하게 하면서 부정적 인물과의 연관을 부정하게 만든다.[^1]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는 잘못된 신화가 아니다. 신화로 분장한 이데올로기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로버트 맥키[^2]는 이 밑에 놓인 인간학적 사실에 이름을 붙인다. 모든 관객은 즉각적이고 본능적으로 그가 '선의 중심'(Center of Good)이라 부르는 것을 찾는다. 가장 착한 인물이 아니라, 보호할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을 말이다. 이것은 만들어진 반응이 아니다. 맥키가 삶의 긍정적 가치들—정의, 힘, 생존, 사랑, 진리—에 대한 감정적 욕구로 묘사하는 것이다.[^2] 니콜스는 이 욕구가 국민국가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고 본다. 이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말은 옳다. 그러나 그 욕구 자체는 이용에 앞서 존재한다.
위기: 만약 그녀의 주장이 끝까지 옳다면?
니콜스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받아들여 보자. 선과 악의 틀이전적으로근대 정치의 산물, 즉 이전에는 개인적이고 특수했던 이야기 위에 덧씌운 19세기의 층위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가톨릭의 주장은 향수에 불과한 것으로 무너진다. 교회는 단지 민족주의적 서사 논리를 흡수하여 신학적 의상을 입힌 것이 된다. 에페소서 6장의 영적 전투, 요한 묵시록의 우주적 드라마, 하느님의 도성과 세속 도성의 대결—이 모든 것이 이 독해에 따르면 사회적 결속을 만들어내고 외부 집단을 악마화하는 또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이 도전의 가장 까다로운 형태이며, 경건한 후퇴가 아닌 진정한 응답을 받을 자격이 있다.
제임스 시어[^3]가 그 응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시어에 따르면 문제는 우리가 서사 안에서 살고 있느냐가 아니다—우리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살고 있다—문제는 어떤 서사가 참될 만큼 충분히 크냐 하는 것이다. 영혼을 두고 벌이는 우주적 전투를 자신의 서사로 받아들인 사람은 "삶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진이냐 후퇴냐, 충실이냐 배신이냐, 구원이냐 상실이냐로 답할 것이다.[^3] 순전히 진화론적 서사를 가진 사람은 자원 관리의 관점에서 답할 것이다. 어느 쪽도 서사 바깥으로 나가 확인할 수 없다. 가톨릭의 주장은 선과 악이 그 편재성에 의해 검증되는 보편적 구조라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전하는 특정한 이야기—고통 밖에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안으로 들어오시는 하느님의 이야기—가 인간 경험의 실제 모양에 들어맞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드러내는 것, 이데올로기가 드러낼 수 없는 것
여기서 발타사르는 필수불가결해진다. 그가『영광』(Gloria)에서 끌어내는 구분—인식된 아름다움과 제조된 아름다움 사이의 구분—은 니콜스의 문제에 정확히 대응한다. 이데올로기적 스토리텔링은 숭고함을제조한다,판에 박힌 반복 속에서. 위기는 언제나 실존적이고, 악당은 언제나 유일무이하게 괴물적이며, 영웅은 언제나 유일무이하게 선택받은 자다. 이와 반대로 진정한 서사의 아름다움은인식되는것이다. 그것은 이미 알려진 무언가, 관객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무언가의 힘으로 다가온다.
니콜스가 이데올로기 이전의 이야기로 언급하는 『일리아스』는 여기서 많은 것을 보여준다. 아킬레우스는 선한 편의 일원이 아니다. 그는 장엄하고, 살인적이며, 비탄에 잠겨 있으면서도 결국 프리아모스를 향해 거의 견딜 수 없을 만큼 섬세한 제스처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 이야기는 그를 평면화하지도, 우리에게 그를 승인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 이야기가 요구하는 것은 무언가를인식하라는것이다—필멸의 무서운 무게, 사랑과 분노가 때로 같은 감정인 방식을 말이다. 그러한 인식은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우구스티노가 말한 불안한 마음에 더 가깝다. 자신이 지어진 목적의 형상을 모든 이야기에서 찾으면서, 그것을 늘 놓치는 피조물의 마음이다.
피터슨의[^4] 성경 해석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성경의 인물을 다차원적으로 그려내는 것으로 읽는 그의 독법에서, 영웅은 위를 향하고 악당은 아래를 향하며, 이야기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파국적으로 실패하지 않는지를 가르친다.[^4] 이것은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정반대다.
독자가 곱씹어 볼 것
니콜스의 말은 옳다. 지배적인 대중 서사가 우리를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우리 자신의 의로움에 더 확신하게 하고, 상대에게 구제불능의 딱지를 더 빨리 붙이게 한다. 이것이 정치적 기원과 정치적 용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녀는 옳다. 그녀가 설명하지 못한 것은 왜 그 갈망이 그토록 완강하게 지속되느냐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민담의 소박함도,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생존 드라마도 그 갈망을 채우지 못하는 것 같다.
불안한 마음은 19세기 선전가들이 발견하고 이용한 인간 설계의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선전가들이 서투르게 모방하고 있던 바로 그것이다. 니콜스는 그 모방을 폭로하는 필수적인 작업을 해냈다. 더 어려운 작업—그녀가 독자에게 남긴 작업—은 그 모방이 무엇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참고 문헌
- Peterson, J. (n.d.).『의미의 지도: 믿음의 건축학』(Maps of Meaning: The Architecture of Belief). 이데올로기와 신화 장(章). — "이데올로기는 이야기의 일부만을 말하며, 그 일부를 마치 전체인 양 말한다."
- McKee, R. (1997).『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이야기의 본질, 구조, 스타일 그리고 원칙』(Story: Substance, Structure, Style and the Principles of Screenwriting). 선의 중심(The Center of Good). — "삶의 긍정적 가치들에 대한 감정적 욕구: 정의, 힘, 생존, 사랑, 진리, 용기."
- Shea, J. (n.d.).『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사도적 선교로』(From Christendom to Apostolic Mission). 제1장. — "하느님과 마귀 사이의 영혼을 둘러싼 우주적 전투의 계시를 자신의 서사로 삼는 사람은 그리스도교의 전진 혹은 후퇴에 따라 그 질문에 답할 것이다."
- Peterson, J. (n.d.).『아담의 죄』(The Sins of Adam)(DMU 영상 강의). — "우리는 어떻게 하면 파국적으로 실패하여 다른 모든 사람을 끌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지를 배우기 위해 영화를 본다."
<p style="font-style:italic;">면책 조항: 이 글의 견해와 내용은 저자 본인의 것입니다. 문법 교정과 명확성 향상을 위해 AI가 활용되었습니다.</p>